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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 체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민음사 호밀빵 햄 샌드위치:찰스 부코스키 장편소설, 열린책들 창작 수업, 민음사 글쓰기에 대하여, 시공사 사랑에 대하여, 시공사

 

 

 도심을 통과하는 하버 고속도로 남부

 거기 아주

 기막힌 데야.

 

 지난 금요일 저녁 거기 앉아 있었어

 1단 기어조차 넣지 않은

 빨간 미등의 장벽 뒤에서

 꼼짝 못하고.

 자욱한 배기가스

 잿빛 저녁 하늘

 과열된 엔진들.

 앞쪽 어디에서

 클러치 타는 냄새가

 나더군.

 차들이

 1단에서 중립으로

 중립에서 1단으로

 오락가락하는

 길고 느릿한

 고속도로 오르막

 어딘가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어.

 적어도 여섯 번은 들었을 거야.

 세상 돌아가는 꼴이

 훤히 보일 만큼.

 다른 채널에선

 얄팍하고 따분한 음악만 나왔어.

 클래식 채널은

 잡히지 않았고

 잡히면

 평범하고 따분한 곡들만

 줄창 나왔지.

 

 라디오를 껐을 때

 머릿속에서 이상한 회오리가 일더니

 이마 안쪽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두 귀를 지나 뒤통수에 도달해

 이마로 돌아간 다음

 다시 뱅뱅 돌더라고.

 궁금했어, 이거 혹시

 사람이 미치는

 증상인가?

 

 추월 차선에 서서

 차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하는데 문득

 차 밖에 있는

 내 모습이 보였어

 팔짱을 끼고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기대 있다가

 주르륵 주저앉아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는

 내 모습이.

 

 나는 차 안에서 이를 악물었어.

 라디오를 다시 틀고

 애써 그 회오리를 억누르며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충동을

 꾹꾹 누를까?

 

 그때 앞 차가

 움직였어

 30센티, 60센티, 90센티!

 

 나는 1단 기어를 넣었어......

 줄이 움직인 거야!

 그러다 기어를 중립으로 돌렸지만

 그래도

 이삼 미터는

 움직였으니 그게 어디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어

 일곱 번째로.

 여전히 암울한 뉴스였지만

 모두들

 그 정도는 참아 넘겼지.

 똑같은 운전면허증과

 앞 차 좌석 위로

 솟은

 똑같은 빙충이의 뒤통수를

 더 쳐다보다가는

 환장할 것 

 같았거든.

 

 그사이 시간은 흐르고

 온도계 바늘은

 오른쪽으로 기울고

 연료 계기판 바늘은

 왼쪽으로 기울었지.

 우리는 궁금했어.

 누구의 클러치가

 타는 걸까?

 

 맥없이 집으로 기어가는

 어쩌면 죽으러 가는

 최후의 거대 공룡.

 우리가 딱

 그 꼴이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