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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 인사

 

채식주의자의 식탁: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불쑥 내민 손, 문학과지성사 동물의 자서전: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사라진 재의 아이:이기성 시집, 현대문학

 

 

 열두번째 시를 쓸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어떤 것의 뒤에 있고, 또 뒤에 있지. 그것은 열두 번이나 뒤에 있어

 그러니 열두번째 시는 언제든 거기 있을 것이고

 

 나는 저녁에 토마토를 하나 훔쳤다. 그것은 푹 익은 얼굴처럼 붉었고 물렁하였고 열두번째 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줄줄 허물어지는 얼굴을 몰랐고 검은 지하실의 음악을 좋아했다. 열두번째의 시가 씌어지기 전에 나는 거리를 걸었고, 늙은 남자의 호주머니를 노렸고 당연히 실패했다. 늙은이와 보르헤스와 구보와 릴케와 쿤데라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나는 열두번째 도둑의 운명을 움켜쥐었다. 경멸과 모욕이 주머니 속에서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어떤 오후에 나는 긴 낮잠에서 깨어나 안녕하세요? 철수 씨, 인사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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