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기성 - 교양소설

 

채식주의자의 식탁: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불쑥 내민 손, 문학과지성사 동물의 자서전: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사라진 재의 아이:이기성 시집, 현대문학

 

 

 빈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는

 회색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다

 

 목에 끈이 걸린 개처럼

 복도를 쿵쾅거리면서 달려간다

 뚱뚱한 그는 목이 마르지만, 탁탁탁 경쾌한 타자소리로 허공을 울리는 것

 

 서명을 기다리는 백지들은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이 불쌍한 사내는 직업이 있다, 입을 꾹 다물고

 조금 더 자라야 한다

 

 드넓은 사무실에서 여직원은

 하루 종일 실을 짰다 풀었다

 (훌쩍이며 노래하듯이)

 오늘의 말을 돌려줘요

 하얀 말을 돌려줘요

 당신의 혀를 돌려줘요

 

 하얀 털실이 흩날리고

 이 불쌍한 사내에겐 직업이 있다

 검은 넥타이에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마침내

 희박한 사물이 되는

 흰 소금처럼 혀에 스미는

 

 드디어 교양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천장이 점점 높아지고

 문이 아득히 멀어진다

 

 서명을 기다리는 서류는 많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성 - 인사  (0) 2021.03.09
이기성 - 양  (0) 2021.03.09
이기성 - 직업의 세계  (0) 2021.03.09
이기성 - 꿈  (0) 2021.03.07
이기성 - 스틸 라이프  (0) 202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