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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 천호동

 

채식주의자의 식탁: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불쑥 내민 손, 문학과지성사 동물의 자서전:이기성 시집, 문학과지성사 사라진 재의 아이:이기성 시집, 현대문학

 

 

 네가 빨간 얼굴로

 울면서 태어났다는 걸 기억할까

 너를 감은 하얀 천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너의 몸이 따뜻했다는 걸

 영문도 모르는 배꼽을 줄줄 흘리면서

 작은 손과 발로 헤엄치듯

 공기 속에서 울었다는 걸 알까

 파란 모래처럼 울었다는 걸

 천호동을 알까

 네가 어린 동생처럼 작았고

 종일 까만 눈으로 낡은 벽지를 뚫어지게 보았다는 걸

 흰 입술로 텅 빈 말을 중얼거렸다는 걸 기억할까

 네가 영원히 자라지 못했다는 걸

 세상이 검고 조용하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외투를 네가

 입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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