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연 - 상계동

 

불온한 검은 피:허연 시집, 민음사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허연 시집, 문학과지성사 오십 미터:허연 시집, 문학과지성사 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사 시의 미소:허연 시인과 함께 읽는 세계시인선, 민음사

 

 

 시골에서 갓 올라온 여공들이

 수다를 떨며 무단 횡단을 하던

 그 거리 뒤편에는

 주거 부정의 고양이들이

 해장국집 쓰레기통 부근에 모여 있곤 했습니다

 

 마을버스가 돌아오면

 하루 종일 강요에 지친 다 똑같은 얼굴들이

 제각기 골목으로 떠밀려 가고

 팔뚝에 문신을 새긴 아이들이

 벼랑으로 몰린 채 비에 젖고 있었습니다

 선택이라는 말은 한번도 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절망을

 주택복권이나 몇 잔의 술로 대신하는

 나름대로의 재주가 있을 뿐

 우리에겐

 텔레비전이나 소문에 묻어 오는 자유가

 전부였습니다

 실직한 청년들은 밤새

 금이 간 남의 집 벽에다

 낯 뜨거운 사랑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렇게나 쓰러지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그래도 아침이면

 어느새 능청스러운 햇살이

 방 한가운데 들어와 있기도 했습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연 - 공작 도시  (0) 2021.02.01
허연 - 목요일  (0) 2021.02.01
허연 - 전쟁 기념비  (0) 2021.02.01
김안 - 환절기  (0) 2021.02.01
김안 - 불가촉천민  (0)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