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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 - 시놉티콘

 

웅진북센 아무는 밤 259 민음의시, One color | One Size@1 오빠생각(일반판):김안 시집, 문학동네

 

 

 당신과 나를 생각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생각한다. 가정과, 가정의 행복과, 국가라는 평화와, 평화의 공포를 생각한다. 담당의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낯익은 얼굴을 생각한다. 말한다. 만진다. 국가의 본능을 생각한다. 마음의 기슭에선 대기와 피가 망각된다. 당신이 사라진다. 사라진 당신을 만지면 손톱 끝에 핏방울이 맺힌다. 핏방울을 머금고 연한 잎이 돋는다. 담당의는 나의 동공 속으로 붉은 빛을 쑤셔 넣는다. 당신의 작고 동그란 입술을 생각한다. 이 가정 속에 당신이 뚫어놓고 간 구멍을 생각한다. 구멍 속에서 손을 뻗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의 손을 만진다. 단 한 사람도 서 있을 수 없는 좁디좁은 광장을 생각한다. 비명의 공동체를 생각한다. 광장에선 무덤처럼 해가 뜨고, 땅을 파면 불개미가 쏟아진다. 창 안에선 검은 눈의 여자들이 아이들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운다. 때론 목을 조른다. 담당의가 쓴 글은 알아볼 수 없다. 손톱을 뜯어 먹는다. 가정의 현재와, 국가의 안위와, 알록달록한 괴물의 알을 생각한다. 담당의의 글이 점점 더 길어진다. 늘어난 알약의 개수를 생각한다.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의 해방을 생각한다. 태어나지 않을 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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