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며
아무라비족의 벽화 같은 것이며
유통기한은 물론 공소시효나 소멸시효 따위도 존재치 않는
예수와 붓다의 경전보다 더 숭고한 진실의 언어이다
이러한 것에 관해 새와 풀꽃과 우물과 물푸레나무와 아름다운 비단뱀에게조차 나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진실에 관해 사유하지 않더라도
침대 위에서의 사랑과 생리현상의 해결과 블랙커피를 음미하는 것과 무협지를 읽는 것엔 하등의 지장이 없다
노을 속에서 개와 유유히 산책하는 것과 샛노란 은행잎 사박사박 떨어지는 가을을 감상하는 것에도 장애가 없다
그대가 속한 제국은 호흡을 멈추기 직전까지도
그대를 참으로 정의롭고 공정하게 대할 것이다
혹여, 그대 별자리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면
사후까지도 제국으로부터 은혜로운 다스림을 받기 위해
무덤에서 부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그대가 아직 생물이 아니었을 적
누군가가 그대 아버지 뺨을 후려갈겼다
누군가가 그대 아버지 앙상한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대 아버지는 화살에 꽂힌 짐승처럼 무너졌고
사나운 발은 무너진 그대 아버지를 밟았다 지근지근 으깨어지도록
그런 다음 그대 아버지 주머니에 소중히 넣어둔
사과와 조약돌과 봄이 오면 뿌릴 꽃씨를 강탈했다
그러고는 법이 신속히 제정되었다
그대 아버지를 바닥에 무너뜨린 자는
시신처럼 널브러진 그대 아버지 흐린 귀에 대고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속삭였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해, 안녕과 질서를 위해 순수하고 정직해야 해, 그래야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거지"
그날 이후 그대 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순진무구 어린아이처럼 법을 준수하며 한 끼 밥을 벌었다
최초의 정의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최초의 원칙도 그렇게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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