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도시 위로 궤도를 이탈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몸은 욕망과 순수만이 혼재되었을 뿐이다. 구원없이 작곡된 레퀴엠처럼. 내상을 입고 피 흘리는 눈동자 곁, 흰 꽃들이 수북하게 피어 있었다. 계절을 지운 식물의 비밀에 관해 염려하지 않았다. 이국의 음률로 채색된 불빛들, 좌표를 잃은 것도 그곳에 흘러든 것도 포즈에 불과했다. 허공의 방, 밀폐 내부의 또 다른 밀폐. 기억하고 있었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처음이 적주 속에 담겨 일렁거렸다.
한 번도 의지로 겨울을 설계한 적 없어요.
월경한 이들에 의해 엎질러진 풍경, 다친 꽃은 여전히
줄기 속을 흐르며
욕망했지만 태엽은 통증을 감고 있었고 눈보라는 그치지
않았고
음악이 다 풀리면 태엽이 멈춰야 했지만 그녀는 금세 녹아버릴 눈꽃 모양 위태했다. 흐린 날 눈빛처럼 아득하던 적주. 유리에 부딪히는 눈을 바라보다 고독도 모아 태우면 저렇게 흩날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갈빗대 사이에 박힌 고드름. 음률이 와류를 일으켰지만 침묵은 계속되었고 투시되지 못한 불빛만이 국경을 건너고 있었다. 엎질러진 사연은 증발하지 않는다는 지문이 심장 근처를 스쳐 갔는데... 새벽녘, 나는 유체처럼 외부였다. 문득 돌아본 저편, 힘없이 흔들리는 손이 보였다. 인적 하나 없는 희뿌연 원형 속에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민 - 그림자극 (0) | 2020.11.14 |
---|---|
안민 - 최초의 정의 (0) | 2020.11.14 |
안민 - 모래시계 (0) | 2020.11.14 |
안민 - 사춘기에서 그 다음 절기까지 (0) | 2020.11.14 |
안민 - 당신을 향해 달리는 당신 (0) | 2020.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