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때였어. 나란히 누웠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눕던. 안 보이는 달이 더 캄캄한 쪽으로 기울던. 내밀었던 손을 안으로 숨기던. 엎드린 말들을 먼 곳으로 밀어내던. 밀려나는 줄도 모르고 밀려나던.
유리창 안에는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 금을 그으면 두 얼굴이 될까. 두 사람이 될까. 내 입김이 나를 자꾸 지워서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어. 입구와 출구처럼. 떨어진 잎사귀처럼.
바닥인 바닥과
바닥을 모르는 바닥
어느 쪽이 될까
어느 쪽이 될래
나는 더도 없고 덜도 없어 앞가 뒤가 없지. 그때도 없고 지금도 없으니까 내일을 모르고 모레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그냥 모르는 사람이 될래.
구름이 그림자를 묻고 있어. 곧 새도 떠나겠지. 왜 가는지도 모르고 날아갈 거야. 가도 가도 갈 곳이 없어서. 해도 해도 할 일이 남아서. 울지 못해 따라오는 시간이 있지. 가라앉는 호수가 있어. 떨어진 잎사귀들이 떠내려가. 가라앉을 사이도 없이. 가벼워지기 위해서라고 할게.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라고 할게.
몸은 투명해지고 밤이 나를 감추니
나머지는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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