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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 행인

 

바나나의 웃음:최호일 시집, 중앙북스

 

 

 거리는 심각하고 당신은 표정이 없네

 가까운 종이에 눈과 입술과 계절을 그려 넣고

 

 돌과 사람과 나무의 이름을 지우고

 사물들은 분실한 그림의 뒷면같이 가벼워진다

 

 우리는 검은색을 추구하고 다른 방향을 사랑해

 

 포르노 배우의 이름처럼

 공기의 지난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간밤이 내게

 여러 통의 편지를 쓰고 잊어버린 얼굴로 지나간다

 

 어느 골목으로

 가을이 유령처럼 지나다닌다는 문장처럼

 당분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백 통의 편지를 쓰고 나서

 

 지금 이곳에 없는 인형처럼

 내게 가장 알맞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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