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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 민달팽이

 

바나나의 웃음:최호일 시집, 중앙북스

 

 

 너는 밤과 동일하구나 고개를 들어 우리는 학자처럼 바라본다 다른 나라의 기이한 서적을 읽듯

 

 인생이 명료해지도록

 

 천 개의 단어를 넣고 뚜껑을 닫아놓은 나무상자처럼 그것을 다시 뒤적이는 손처럼

 잠을 커피에 찍어 먹는다

 

 빛을 어둡고 축축하게 보관한다 너는 태어나다가 죽은 아이의 얼굴을 달고 있구나

 먹다 남긴 과자 봉지 속에는 지나간 시간이 들어 있을까

 

 야구 선수들은 정말 베이스를 지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 구멍 사이로 밤이 온다 어둠을 빛의 오른쪽 얼굴로 이해한다

 

 나로부터 한없이 늘어나는 것이 너는 밤보다 조금 더 길게 어두워지고 있다 몸에 들어온 조용한 고무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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