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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 열두시에 다가오는 것

 

바나나의 웃음:최호일 시집, 중앙북스

 

 

 백 년 후에도 열두시가 있을까 나는 없고

 열두시만 있을 것

 고양이같이 까만 열두시가 있고

 모자와 옷을 벗어 걸고 구름 사이로 다리를 조금 벌리고 누워 있는 여자가 있을 것 같다 그걸 새로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고 창밖에는 거짓말로 날아가는 비행기 

 고양이가 그걸 모를 리 없지

 

 나는 보는 중이다 길을 가다가 꽃잎과 다른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다가

 이상한 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순간을

 우리는 발목이 없구나

 백 년 전 조용한 원형으로 들어 올려지거나 구덩이에 빠지듯

 

 이런 순간을 고양이가 놓고 간 그림이라고 말할까

 

 눈은 없지만 눈물이 난다

 슬픔을 사용하기 위해 사다 놓은 인형처럼

 표정이 있는 아이스크림이 필요하겠지

 

 나는 가로수와 꽃과 내일, 그리고

 찻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

 

 터벅터벅 걸어가

 그림 속 담배 연기의 형태로 매일 죽는다 뺨을 때리면

 열두시에 없어지는 손바닥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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