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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 -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들리는 가로수길에서

 

소피아 로렌의 시간:기혁 시집, 문학과지성사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기혁 시집, 민음사 베개 3호, 시용 언.어.총.회, 테오리아

 

 

 나무는 살이 연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질 때에도

 그 이름 위로 사랑과

 저주가 덧씌워질 때에도 나무는

 

 사람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울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약속하고

 사람 때문에 기억한다

 

 밑동만 남긴 채 잘라버려도

 나무는 환상통을 앓으며 자라난다

 새가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의 발톱에 파인 허공에 눈물짓던

 한 사람 때문에

 

 나무는 죽어서도 숲을 이루고

 들짐승을 키운다

 저보다 살이 연한 사람들이 숨어들 수 있도록

 낯빛까지 올라온 사연들을

 어둠 속에 담아준다

 

 나무는 음이 연하다 에덴에서도 그랬다

 

 매 순간 인도를 향해 몸을 휘면서

 어둠 속에 담아둔 것들을

 사람보다 오래 옮기고 오래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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