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살이 연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질 때에도
그 이름 위로 사랑과
저주가 덧씌워질 때에도 나무는
사람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울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약속하고
사람 때문에 기억한다
밑동만 남긴 채 잘라버려도
나무는 환상통을 앓으며 자라난다
새가 앉았다 간 자리
바람의 발톱에 파인 허공에 눈물짓던
한 사람 때문에
나무는 죽어서도 숲을 이루고
들짐승을 키운다
저보다 살이 연한 사람들이 숨어들 수 있도록
낯빛까지 올라온 사연들을
어둠 속에 담아준다
나무는 음이 연하다 에덴에서도 그랬다
매 순간 인도를 향해 몸을 휘면서
어둠 속에 담아둔 것들을
사람보다 오래 옮기고 오래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