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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 오늘과

 

흑백, 문학과지성사 네모, 문학과지성사 반복, 문학동네 이노플리아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386 문학과지성 시인선, One color | One Size@1

 

 

 오늘 아침 서투르게 옆구리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엉뚱하게 엄마라는 무감한 물건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태어나서 즐겁다

 다섯 권의 책을 하늘에 버렸다

 버스 창문에 들러붙은 가랑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시에 눈이 내렸다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바르지 못한 자세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처녀들이 깔깔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춤추었다

 문득 헤로인이 한 봉지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지기를 바랐다

 글자들이 벌레처럼 뇌를 뚫고 빠져나왔다

 고양이 네 마리가 누런 태양을 자꾸 찌르고 있었다

 권태의 절망이 얼어붙고 있는 골목의 한

 나뭇가지가 붉은 구름을 유괴하고 있었다

 역설이 방석을 달라고 졸랐지만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모든 것이 질서였다 우연마저 그랬다

 여자는 이빨을 닦으며 남자는 비듬을 털며

 태양의 무기력을 비웃었다

 두 번의 겨울이 지나도 말들은 얼음을 풀고

 녹아 흘러가지 못했다

 빙산 같은 침묵이 방 안에 휘황하였고

 온갖 색들이 먼지처럼 반향하였다

 짜릿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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