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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 모르핀

 

[민음사] 작가의 탄생 유진목 시집 [민음의 시 275 양장 ] 연애의 책, 삼인 식물원, 아침달 시인 목소리, 북노마드 산책과 연애, 시간의흐름

 

 

 여자가 여긴 뭐 하러 왔어?

 잠자코 집에 있지 않고

 

 넌 아직도 전쟁이 옛날 같은가 보다

 

 나는 모르핀을 놓으며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누가 처음 말했을까?

 

 나는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너는 총을 잘 쏘니까

 너 때문에 여러 번 살았지

 

 그 씨발년들이 달려들 때

 나는 네가 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니까

 널 믿은 게

 

 팔이 없어서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

 

 나는 모르핀을 마저 밀어 넣었다

 

 혼자서 그걸 할 수가 없어

 살아도 산 게 아니지

 

 그는 웃는 것 같았고

 그게 우는 것 같았다.

 

 제발 부탁이야

 

 한번만

 

 아니

 

 한 번만

 

 나는 주머니칼로 그것을 잘라 참호 밖으로 던졌다.

 

 머리를 잃은 자가 몸통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귀신이네

 

 나는 손을 닦으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남자에게 팔은 꼭 있어야 해

 

 여자는 모르겠다

 넌 어때?

 

 글쎄

 꼭 있어야 하는 게 있나?

 

 모르핀은 얼마나 남았지?

 

 나는 빈 통을 보며 말했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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