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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섬은 우산도 없이 내리는 별을 맞고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일출이 평소와 달라서

 저녁에 나가려 했으나

 대낮에 발 벗고 나섰답니다

 

 발 벗고 나선 해변에

 이미 발 벗고 나선 사람의 발자국

 

 발자국은 왜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발자국은 언제까지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요

 

 짙어져가는 걸 거스르면

 옅어질까요?

 

 물 한 모금만 마실게요

 

 두 손에 없는 건

 두 눈이 가질 수 없나봐요

 

 저물어가는 해 아래서

 섬은 지워져가고

 내 눈엔 얼룩이 뜨고

 더이상 섬에게 미련이 없어요

 

 짙어져가는 걸 거스르니

 깊어지네요

 

 깊어지니 무럭무럭 별이 피네요

 밤하늘엔 별만 백 송이

 나는 침착만 백 송이를 가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