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은 눌은 벽지처럼 매립지 바깥쪽에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라면을 끓이며 봉지에 적힌 글들을, 조리 방법과 첨가물과 맛있게 먹는 법을 내처 읽고 있었다. 유통기한이 딱 하루 남은 이 고결한 식사. 내가 묻힐 것이고, 나보다 먼저 버려진 것들이 묻혔고, 버려진 것 이전에 산 것들이 묻힌 매립지. 내가 노려보았던 자들을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넝마꾼이 되어 주워 올릴 수도 있으리. 어두운 영화관 좌석에서 애인이 몰래 피우던 담배 연기는 태양에 가깝게 다가간 바람처럼, 내가 쓴 愚問처럼 쉽게 부서졌다. 면사같이 가늘고 긴 기억이 국수틀에서 뽑혀 나왔다. 풀들은 수상하게 매립되어 있는 길로는 걷지 않는다. 나는 아무 무게도 없이 코피 흘렸다.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들, 그 위로 얇게 덮인 흙, 그 위로 다시 트럭들이 지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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