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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 불을 꿈꾸며

 

저녁의 기원:조연호 시집, 최측의농간 유고:조연호 시집, 문학동네 암흑향, 민음사 천문, 창비 농경시, 문예중앙

 

 

 더러운 싸전 골목길로 비둘기들이 흙먼지처럼 내려온다. 아이들처럼 손에 흙을 묻히고 말없이 놀던, 할아버지의 치매는 겨울나무처럼 깡마르고 적요로왔다. 열린 문 뒤쪽이 싸한 박하사탕을 물고 보조개 가진 여자애처럼 웃고 있었다. 어미 밖으로 바글바글 몰려나오는 빨간 거미 새끼들이 황혼보다 붉고 아름다웠다. 풀들에 의지해서 소들이, 소들에 의지해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겨울잠이 몽당연필처럼 짧아지고, 깊은 겨울잠 속에서 찬파동물들은 푸른 물결보다 싱싱했을 것이다. 가끔씩 이 지리멸렬은 끈 놓친 풍선처럼 부풀며 하늘로 날아올라 가뭇없이 터져 버리곤 했다. 누군가 강 저편으로 외롭게 돌 던졌고, 항상 돌은 더 아프고 더 외로운 쪽으로만 날아갔다. 어떤 이가 몸속에 깊은 웅덩이를 파고 목마름을 담는다. 식물에게 사주가 없는 것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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