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연호 - 죽음의 집

 

저녁의 기원:조연호 시집, 최측의농간 유고:조연호 시집, 문학동네 암흑향, 민음사 천문, 창비 농경시, 문예중앙

 

 

 하늘이 녹물처럼 붉게 일었다. 모든 기억이 한 개의 덩어리였어. 새들이 신중하게 생명 以前로 날아간다. 나는 茶器店에서 기다리는 애인을 데리러 슬리퍼를 끌고 자취방을 나와 좁은 골목 낮은 담벽을 걸었다. 벽지는 썩고 벽은 자꾸 물을 품고 달관한 듯 세상 쪽으로 기울었다. 그 벽 한구석에 나는 달력 대신 뭉크의 판화 [죽음의 집]을 붙여 놓았다. 창밖은 비극적 세계관이지 않은가, 죽은 사람을 흰 천으로 덮어놓고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되도록 자세하게 어둠과 대추나무와 이름 없는 마룻바닥들에 대해 말하려고 애썼다. 아니, 나는 바닷가로 가서 뜨거운 모래 위에 수많은 바다거북의 알을 낳고 행복하게 죽어 가고 싶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연호 - 불을 꿈꾸며  (0) 2020.12.20
조연호 - 길을 향하여  (0) 2020.12.20
이원 - 얼룩말 지우개에 덧붙임  (0) 2020.12.12
이원 - 거의 눈이 올 날씨  (0) 2020.12.12
이원 - 얼룩말은 불행하다는 관점  (0)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