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문자 - 총의 무덤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최문자 시집, 민음사 파의 목소리:최문자 시집, 문학동네 사과 사이사이 새:최문자 시집, 민음사 최문자 시세계의 지평, 푸른사상

 

 

 힐끗 보았네

 

 베란다 상자 속에 총 한 자루 있었지

 아주 위태로운 자세로

 

 그는 조금씩 총이 필요했을까?

 

 달이 뜨면

 달빛이 흘러야 할 곳에 총이 들어가 있었지

 달빛 속으로 총은 어떻게 들어갔을까?

 

 총은 날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총 끝에 달려 있을 허공

 새까만 기운들이

 힐끗힐끗 나를 보고 있었죠

 

 총은 끊임없이 총소리를 기다릴 거야

 나는 무서운 걸 자꾸 총이라고 깨닫는 사람

 

 저녁엔 베란다를 바라보다 잠들었다

 봄에도 꿈속엔 총이 지나갔지

 믿었던 총알을 맞고 죽은 마리오 카바라도시가 되는 꿈

 토스카처럼 애절하게 울다 두 발이 녹는 꿈

 세상에 비극적으로 서 있는 모든 레버들을 당기는 꿈

 

 그는 죽기 사흘 전

 기관에 총을 반납하고 왔다

 

 죽은 자는 불쑥 총이 되고

 산 자들은 총으로 만든 부목을 대고

 무서워서 조금씩 그를 잊었다

 

 달이 뜨면

 베란다는 불면이다

 끝까지 무서운 일기를 쓰던 총의 손가락들과

 이마가 하얀 빈 나무 상자

 잠들지 못하고 있다 

 

 탕탕탕

 쓰러뜨리고 싶은 검은 개들이 그렇게 많았었나?

 

 가끔 텔레비전을 크게 켜 놓고 나는 울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원 - 뉘앙스  (0) 2020.12.12
최문자 - 공유  (0) 2020.12.09
최문자 - 흰 줄  (0) 2020.12.09
최문자 - 야생  (0) 2020.12.09
최문자 - 분실된 시  (0) 2020.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