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진 가죽, 구멍으로 공기가 다 빠져나가버렸어
김빠진 콜라처럼 검은색으로만
나를 이해한다
두 귀만 남은 얼굴로 복잡해지는
나를 변명해
나를 불러 뒤돌아보면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얼굴이 달려가고
나를 지나쳐 앞장서고
순간 나는 공터다
가장 깊이 공기를 들이마시면
따뜻해지는 두 발
발가락들이 부풀어 올라
바닥으로부터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형형색색으로 사라지는
그러나 모두 증발하지 못하고
뼈로 남는
봄
진공의 가죽으로 남아 나는
기다린다
바닥에 얼굴을 구겨놓고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공터의 바깥부터 올이 풀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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