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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 가장 달콤한 소리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마스크제공), 단품 시소의 감정, 민음사

 

 

 느슨해진 가죽, 구멍으로 공기가 다 빠져나가버렸어

 김빠진 콜라처럼 검은색으로만

 나를 이해한다

 두 귀만 남은 얼굴로 복잡해지는

 나를 변명해

 

 나를 불러 뒤돌아보면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얼굴이 달려가고

 나를 지나쳐 앞장서고

 순간 나는 공터다

 

 가장 깊이 공기를 들이마시면

 따뜻해지는 두 발

 발가락들이 부풀어 올라

 바닥으로부터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형형색색으로 사라지는

 그러나 모두 증발하지 못하고

 뼈로 남는

 봄

 

 진공의 가죽으로 남아 나는

 기다린다

 바닥에 얼굴을 구겨놓고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공터의 바깥부터 올이 풀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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