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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호 - 코트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홍지호 시집, 문학동네

 

 

 갖고 싶은 코트가 있었다. 갖고 싶어서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구도 살 것 같지 않았다. 오래된 디자인을. 오래된 색상을 갖고 있었다. 어떤 색상을 가졌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해지고 바래 있었지만 진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낡아 있었을 뿐이다. 코트를 보러 자주 갔다.

 

 걸려 있었다. 누군가라도 되는 것처럼.

 

 눈이 오는 날이었나. 어떤 사람이 코트의 소매를 오래도록 잡고 있었다 손목처럼.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목을 붙잡는 사람의 그을린 눈물과 코트의 색상이 닮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코트에 얽힌 그런 기억이 있다.

 

 코트를 사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코트는 걸려 있었다. 누군가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코트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담담하지만 선명하게 걸려 있는 코트의 옷깃을 여며주면서도.

 그러나 코트에 얽힌 이야기들이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트를 자주 보러 갔다. 눈이라도 내리면.

 소매를 잡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내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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