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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호 - 까맣고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홍지호 시집, 문학동네

 

 

 나에게는 어린 까마귀들이 있다

 

 어린 까마귀는

 까마귀로 태어나서 까마귀가 되어야만 까악

 

 나는 까마귀가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까마귀 운다고 쓴다

 

 아무도 울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새들을

 더러운 문장으로 울려버릴 수 있고

 하얗고 더러운 새장에 나의 까마귀를 가둘 수도 있다

 

 나는 병원에서 새장을 생각했다

 

 의사들은 나를 둘러싸고

 아프지 않게 해주는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먹여주면서

 나를 하얗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꾸 내가 아프다고 한다

 

 이렇게 아픈 날이면

 까마귀가 더

 까맣게 보이고

 

 나는 나의 어린 까마귀들을 자꾸만 하얗게

 하얗게

 

 술에 취해서

 전봇대 앞에 선 사람처럼 이런 게 왜 여기 있어

 거울 앞에서

 아무래도 잘못 만들어진 거 같아요

 

 나는 한 번도 나를 만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어린 까마귀들을 하얗게

 

 당신은 나를 까맣게

 

 나의 어린 까마귀들아

 울고 있니

 거울을 보고

 아무도 울지 않아도

 너라도 울고 있다면

 다행이다

 

 까마귀가 까악

 

 까맣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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