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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운 - 행인들

 

산책하는 사람에게:안태운 시집, 문학과지성사, 9788932037974, 안태운 저 감은 눈이 내 얼굴을:안태운 시집, 민음사

 

 

 잘 지내나요, 행인들

 어떻게 가나요

 행인을 멈추며 행인이 되어보고자

 나는 허밍을 합니다

 허밍은 잘 달아나는군요

 허밍은 시도 때도 없군요

 행인들, 나는 신호등을 만집니다

 그렇게 신호등을 건너고 인도를 걷다가 마주치는 모습은

 누군가 동물에게 존댓말하는 장면

 이제 그만 짖어요

 집으로 돌아갈까요?

 그 후 동물의 뼈를 쥐어보며 고대 유물을 바라보듯 하는 인간도 지나칩니다

 나는 전조등 속으로 눈동자를 빠뜨리며

 눈동자가 서서히 생겨나는 걸 잘 지켜보는데......

 행인들, 그러면 멀리 있는 흔적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도 같군요

 어떻게 가나요 

 어디를

 인간의 생애 주기를 따라가볼 수도 있겠죠

 태어나고 맺고 꿈꾸고 낳고 기억하고 돌보고......

 윗대의 가정이 상실되어도 아랫대의 가정은 이어지므로 슬픔은 기어코라도 지나갈 것임을

 그런 건 어떤 느낌인가요, 행인들

 후대를 생각한다는 것은

 걱정한다는 것은

 건강하기를 바라요

 나는 산책에서 돌아온 내 늙어가는 개를 바라볼 겁니다

 태어난 조카를 경계하며 짖다가도 어느 순간 조카의 얼굴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는 개를

 그리고

 멈춰 있는 시계만 보면 희한하게도 계속 웃던, 자라서 이제는 움직이는 것들에만 반응하는 조카를

 표정이 생겨나나요

 알 수가 있나요, 행인들

 여러 언어를, 하지만 모국어처럼은 아니게 구사하는 인간들은 사투리를 끝도 없이 불려가는 것 같군요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는 있었죠

 행인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인간의 생각을 훔쳐볼 수도 있었습니다

 훔쳐서 그대로 행동해볼 수도

 춤추기 위해 만든 노래처럼

 노래가 되어 춤을 춰보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지나치는군요, 행인들

 행인을 멈추며 행인이 되어보고자

 나는 누군가를 서성여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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