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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호 - 화요일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홍지호 시집, 문학동네

 

 

 비가 내리고 겨울인데 비가 내리고 우리는 이 밤을 이렇게밖에 보낼 줄 모르고 모닥불 피웠다 불이 붙었다 누군가 불은 붙어 있는 것인가 매달려 있는 것인가 이야기하며 웃는 소리가 사방의 벽에 옮겨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과 비가 들이치는 창틀은 창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건축물 안에서 우리는 추위를 이렇게밖에 견딜 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붙어버린 것이다 창틀은 창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매달려 있는 것인가

 

 오늘은 달이 없네 말하자 오늘은 달이 안 보이네 라고 고쳐주는 목소리가 울린다 달이 안 보인다 어제는 보았다 저기 주택가의 불빛이 달빛이라고 생각하자 말해주는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저건 달빛이 아니고 

 춤추는 모닥불 뒤로 사방의 벽에 그림자가 매달려 있다 불러도 그림자는 대답이 없다 그림자끼리 이야기하게 두었다 친구는 그저께 죽었다

 

 친구의 그림자는 친구의 그림자

 

 여기에서 나는 은유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폐건물을 지나칠 때 공포는 조성되는 것이다

 

 나는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기록되었다

 

 녹이 슬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철거 후 정원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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