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나의 침몰이다
아침에 날기 시작해 저녁 무렵 진화한 새들이 하나둘
떨어질 때 일어나는 세계의 변형이자
밤부터 얼기 시작해 새벽 무렵 정점을 찍은 투명함이 긴장을
놓아 버리자마자 엎질러지는
물바다, 거대한 선박이 항해할 때 동반되는
소리의 커다란 모호함이다
덜 녹은 얼음들이 뜬 채로 밤 지새우는 동안 녹이 슨
면도날, 거울의 절벽에 매달린 채 점점 둥글어져 가는
핏방울, 그저 그런 선상 파티에 참가할 때
배에서 내리면 발 디딜 곳 하나 없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 한복판이 대서양처럼
새하얘짐이다
어쩌면, 하나의 탄생이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웅장하고 불안한 선박의 노골적인 엔진 소리 같은
그것은 고문에 가까운 하나의 이미지, 제 발로 살아 움직이는 고래들처럼
물속에 물을 토하며 거대해진다
포악하게, 악착같이, 굴착기처럼 파고드는
물속에서만 본색을 드러내는 웅장한 소리
혹은 백상아리의 피부를 쓰다듬는 물결들의 환희이거나
이빨에 물어 뜯겨 너덜거리는 살들의 춤
얼음을 깨며 쇄빙선은 싱싱해지고
눈 속에 구명보트 같은 눈빛 숨기고 얼어 가는
생선들은 선박의 마음을 이해하느라 더욱 단단해져 간다
그것은 하나의 무너짐,
깨진 얼음들이 살 위로 쏟아져 흰 빛 아래 방치됨이고
밤은 물컵처럼 시원해진다
희미하게 전진하며 나의 흰 배가 너의 흰 배 위에 가닿듯
그것은 밤새 퇴고하는 손이 그리는 궤적의 탁월함
닻을 내리고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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