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땀 흘릴 때 땀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오래된 기도 냄새가 있어
일인용 침대처럼 홀로 삐걱이던 밤, 젖은 수건처럼 비틀어 짰을 기도의 오래된 물
냄새의 모든 단추를 풀고 들어가면 나오는 깊은 산정호수가 있어
타오르며 한사코 공중에 매달리는 물안개와 그 속으로 안기는 새들의 자욱한 날갯소리
그리고
커튼이 없다면 지금 이 방으로 부는 바람은 아무
쓸모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커튼이 흔들리고 있어
그럴 때 사방에선
서서히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지친 손가락들 잘려 나가는 대신 풀들이 땅 가까이로 좀 더
몸을 눕히고 구원처럼 나는 너에게로 조금
가까워지고 시간은 밤, 계절은 여름으로
가까스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동안
다시 그때 그 주말의 오후로
*
그날의 커튼은 기억하지 바람이 어떤 순서로
어떤 강도로 허공을 쓰다듬었는지
그날의 바람은 기억하지 하늘에 뜬
새들의 동작을 일일이 기억해 내고선
공중에 적은 다음 바람에 날려 버리지
시원한 열차에 올라 창밖 풍경을 다 갖고 싶어라고 말해버리자, 리듬에 맞춰
시원찮은 문장들 따윈 바람에 날려 보내며
그동안, 새들이 낳고 먹이고 길러 낸 둥근 평화
우리가 컵에 담으면 컵이 되고 바다에 담으면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물처럼 될 순 없겠지만 그동안 새들의 선회를 낳은 둥근 평화
우리가 사물 소리를 잘 내는 흑인처럼
지나가다 내 보는 헬리콥터 소리만으로 갑자기 모두
얼굴 가리고 고개 숙이게 만들 순 없겠지만
둥근 호수의 면상에 이는 무수한 파문, 떨어지면서 으악이 되는 모든 음악의 속 시원함
그동안에도 새들의 알은 단단해지고 그 안의 출렁이는 평화,
네 안으로 이주하는 내 입속 새 떼들의 젖은 날개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의 표면장력이 튼튼해지고
네가 회전할 때, 네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들이 그리는 포물선의 아름다움
그때 그 시간이 그리는 완벽한 걸음걸이와 그 안의 둥근, 평화
우리가 동화 속 연인들처럼 동이 틀 때까지 놓지 않고 켜 놓은 환한 양손이
우리보다 먼저 졸다
살짝, 가볍게 벌어지고
이윽고 완전한 한 마리의 새로 펼쳐진 그것은
불 꺼진 손안에 그대로 안긴 채
다시 우리의 잠 속으로 날아들게 되는 거겠지
*
숨 한번 크게
들이쉬자 하나의 둥글고 고요한 호수로 펼쳐졌다
뒤늦게 그
위로 지나가는 한 척의 쾌속정이 일으키는 수만의 물결들의 단추를 수면의 사방 끝까지 다
잠가 주고 나면
어느새 여기도 빈방이 되어 버린다 다른 모든 방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방은 볼 것도 없어' 당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반쯤 열린 문틈으로 훔쳐본 커튼
바람이 없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백색의 커튼은
침묵 속에 목매단 채
내리쬐는 햇살 속에
환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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