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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 규방가사

 

무족영원:신해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Syzygy:신해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간결한 배치, 민음사 일인용 책:신해욱 산문집, 봄날의책 해몽전파사 신해욱 소설 양장본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평행하는 두 개의 직선으로

 방을 만들었어, 누가 말했다

 은밀하고 또

 종말이 와도 끄떡없어, 누가 말했다, 좋지

 양이 하나

 나무가 하나

 돌이 하나

 새가 하나

 사람은 아직, 누가 나를 말렸다

 사람이 살면 살기로 채워지고

 사람이 죽으면 생기로 숨 막혀서

 이목구비를 떼어

 이렇게 주머니에 넣은 다음, 누가 나의 얼굴을 쓸었다

 데스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연구를 해야 해, 봐봐,

 양이 있지, 양은 많지,

 하나가 아니지, 누가 웃었다

 띠 벽지를 둘러 길을 내서

 우글거리는 양들을 머릿속에서 내몰고

 산소로 오염된 꿈은

 요오드액으로 닦아내고

 심호흡을 하고

 메스꺼움을 누르고

 평행하는 두 개의 직선으로, 누가 말끝을 흐렸다

 양의 대열은 엄숙하게 이어지는데

 띠 벽지를 뜯어 먹는 것으로 허기를 달래며

 양은 양의 양을 낳아

 무한 속으로 사라지는데, 누가 숨을 죽였다

 한 마리의 양만은 기어이

 찾김을 당하지 않고

 하나의 제곱은 하나, 거듭거듭 제곱도 하나

 평행하는 두 개의 직선에 갇혀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는 창자가 구불거리는데

 

 봐봐, 누가 속삭였다

 

 기다리라니까, 다시 속삭였다

 

 끄떡도 없어, 다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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