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공교롭고 매로부터 달아난다. 매는 멀지 않으며 겹눈을 가지고 있다. 삶을 다 쓰고 나면 무엇을 당겨 써야 하나요. 단것을 달고 사는 이유는 그것이 값싸고 흔하고 손쉽기 때문이다. 후회와 함께 너는 살찌고 매는 하나의 정신으로서 멀어진다. 소유할 수 없는 계단들 위로 한 발 한 발 얼음이 언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는 미로가 있고 가보지 못한 높은 곳에는 위로가 있다. 날지 못하는 날개는 무섭게 무겁고 피라미드의 모서리는 나날이 닳아간다. 너의 삶은 흔들리는 원추의 곡선으로 나아갔다 돌아온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목소리가 있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면 바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누구의 울음인가. 날아가는 새의 눈은 감정을 흘리지 않고 명료한 삶은 언제까지나 요원하다. 나는 온종일 나와 나와 나와 있습니다. 너는 없는 새와 없는 피라미드 곁에서 뜬눈으로 꿈을 꾼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려는 꿈이 있습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매. 이제는 날지 않는 어제의 매. 없는 새의 있음으로 공간은 희미한 날갯짓 소리를 간직한다. 없는 사물의 있는 감정으로 어떤 장소는 과거에서 미래로 영원토록 이어진다. 꿈에서 깨어나듯 실눈을 뜨고 한낮의 어둠 속에서 창밖의 해를 바라보면 새의 눈과 마주치는 기쁨을 문득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마주하는 마음과 마음이 그려내는 흐릿한 무늬가 벽을 타고 가만히 흘러내리는 기적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닿을 수 없는 중심의 미로를 향해 새는 오늘도 날아간다. 수다한 속삭임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내뱉지 못했던 어느 날의 사소한 입속말들. 너와 나의 비밀은 모서리부터 닳아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정신은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날개 없이도 날아갈 수 있습니다. 꼭대기로부터 빛을 받아 흘러내리는 것을 너는 피라미드라고 불렀다. 그 곁으로 반짝이며 날아가는 그림자가 하나 있어 새는 매로부터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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