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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처음의 양떼구름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이제니 시집, 문학과지성사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사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이제니 시집, 현대문학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창비

 

 

 소년은 사라진 길을 가리킨다. 구름 아래에는 양떼들이 번지고 있다. 풀이 많았고 물이 많아서 소년은 양치기라고 불리었고, 소년이 양치기라 불리었으므로, 그 곁의, 양떼같이 뭉게뭉게한 털을 가진, 희고 작은 개 역시도 양치기 개라고 불리었고,

 

 그사이, 사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사라진 길을 걸어가면서, 소년은,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그림 속 소년이 꾸는,

 가장자리부터 접히며 사라지는 꿈속의 풍경 같다고

 

 먼 나라에서는 희고 긴 성가복을 입은 소년들이

 가슴에 작은 나무 십자가를 매단 채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는 돌림 노래처럼

 

 사라지는 길 위에서 소년은 이제 목 언저리만 남아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고

 

 추위 곁에는 어느새 다가온 모닥불만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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