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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수풀 머리 목소리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이제니 시집, 문학과지성사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사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이제니 시집, 현대문학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창비

 

 

 수풀 머리는 고요하고 흙먼지 낮게 밀려온다

 

 수풀은 머리가 없고 머리는 목소리가 아니어서

 수풀을 향해 서서히 몰려오는 목소리들

 

 여기 울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여기 울면서 멀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말해지지 않을 장소를 가로질러

 말해지지 않는 그 모든 사물들을 건너와

 

 노면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간신히 모이는 곳

 둥지 아래 새들이 자꾸만 자꾸만 놓치는 나뭇가지 같은 것

 

 덤불과 자락과 더미 속에서

 다발과 나락과 두려움 너머로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맴돌 때

 

 나는 당신의 누이가 아닙니다

 누이를 떠나온 목소리는 수풀 머리를 향하고

 

 묻어버린 말들은 모두 어디에 모여 있는가

 모여 있는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누군가를 돕듯 자기 자신을 도우려는 안간힘으로

 

 울지 못한 마음이 수풀 머리 목소리로 밀려올 때

 수풀 머리 목소리가 마음속 구덩이로 모여들 때

 

 낮고 어두운 곳에는 먼저 떠나간 얼굴이 있어

 목소리를 좇아 저 멀리에서부터 걸어오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