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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영숙의 독심술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이장욱 시집, 현대문학 혁명과 모더니즘:러시아의 시와 미학, 시간의흐름

 

 

 내가 아는 한 영숙은

 마음을 읽고 싶지 않았다. 손님이라든가

 내리는 눈의 마음을.

 자기 자신을.

 단 한 글자도.

 그것이 영숙의 힘.

 

 영숙의 옷가게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색깔들이 있지만

 색깔들은 배경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가 이해할 것인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배경이 되는 곳을.

 생각이 있다가

 사라지는 순간을.

 

 손님들은 행인이 되어 떠나갔다.

 하지만 영숙은 슬픔이라는 것을 모르는 세계.

 신촌에서도 이대 앞에서도

 영원한 배경을 이해했다는 뜻일까?

 손님이란 창세기에도 종생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죽은 사람들의 취향은

 대체 어디로?

 

 행인들 가운데서 손님이 불쑥 태어나는 순간을

 영숙은 사랑하였다.

 오늘의 신비는 나에게도

 살아야 할 계절이 있다는 것

 영숙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다는 것

 

 나는 영숙의 세계로 들어가서 조금씩

 조금씩

 영숙에 동화되었다.

 무한한 배경에서 불쑥

 정확한 말을 내뱉는 영숙에

 화사한 색채로 나를 물들이는 영숙에

 곰곰이 눈 내리는

 우리의 먼 배경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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