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과 나영은 동시에 꿈꾸기 시작한다. 나운은 나영에게 바퀴벌레를 잡으라고 한다. 잡아 나운은 나영에게 크게 외친다. 나영은 햄버거 포장지를 이용해 그것을 잡는다. 그러나 그것은 보인다. 불투명한 포장지 너머로 볼 수 있다. 더듬이? 어떤 대칭성? 나영은 단단한 등딱지를 견딜 수 없다. 그것은 갇혀 있지만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힘이 세다. 나운과 나영은 승합차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바깥세상에 대해 몰라도 6인승 승합차 내부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둘. 그때 그것이 기어들어 온 것인데 내부엔 강력살충제가 준비되어 있어서 금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죽여 죽여 나운은 외치고 그것은 진짜 같다. 나영은 이미 한참 전부터 죽이고 있었다. 나운이 외치기도 전에 나영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하필 승합차지? 꿈은 잠시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승리는 예정되어 있고 더 이상 흥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제되어 있다. 완전한 박제의 그것은 장난감 같다. 그것의 죽음은 불투명한 포장지 너머로도 보인다. 너도 그것이 보이니? 나운은 묻고 싶지만 나영은 이제 조용하다. 둘은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 창밖을 응시하는 둘과 대칭을 이루는 두 장의 창은 그대로다. 정확히 둘을 반사하고 밖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운과 나영은 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지 않아. 그래도 나와 너는 각자가 보고 있는 걸 방해하지 않아. 나운과 나영은 동시에 꿈꾸기 시작한다.
*
너는 깨어나는 동시에 말한다. 여기서 너는 나운이다.
너와 나는 동시에 꿈을 꾸었다. 여기서 너는 나영이다. 나영의 꿈속에서 한 여자가 나의 흰 정장에 금색 스프레이를 뿌린다. 실수였다고 여자가 말한다. 나는 흰옷에 금색 스프레이가 뿌려졌다면 천사다 어떤 좋은 징조다 말한다. 그보다 황금인 것 같다. 유럽의 동상인간들처럼 황금에 뒤덮여 있었냐고 묻자 너는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나운은 승합차가 서 있는 초여름의 아침 골목을 걸어간다. 승합차 앞에서 멈춰 승합차의 창유리에 비친 얼굴을 잠시 본다. 나영은 복권방에서 일한다. 나의 마음을 생각한다. 초여름을 지나야 볼 수 있는 것처럼. 꿈같고 청량함. 여기서 나는 나영이고 마음은 나운이다.
*
계속해.
나는 자라서 결혼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나운은 이 모든 게 지겹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고 그 사람이 오랜 세월을 함께한 파트너에게 버림받는 걸 관찰할 기회도 있었다. 관찰을 책으로 쓴다. 책으로 쓰고 책으로 내고 책으로 여긴다. 나운은 어느새 꿈에서 멀리 나아가 꿈에서 멀어진 듯도 하고 꿈에 가까워진 듯도 하다고 생각한다. 벤치에 앉아 생각한다. 나운은 작가로서의 꿈과 나운으로서의 꿈과 나로서의 꿈과 그러나 너로서의 꿈을 혼동하고 있다. 나영은 말한다. 그런데 눈을 들자 나운에게는 초여름의 골목이 보인다. 어쩐지 그것이 지금의 산보에 어울린다. 나영은 빨간 스툴에 앉아 말한다. 너는 골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알게 될 거야 여긴 아직 어린 시절이다 결혼은 정해지지도 않았다. 나는 말하지 않고 토끼처럼 겅중겅중 스텝을 밟을 뿐이었다. 엉킨 머리에선 고운 향기뿐. 계속해. 황금기였다. 잡아! 잡아라! 그것은 나만의 날개처럼. 나만의 꿈처럼. 내게 찢어졌다. 네가 보였다. 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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