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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 정오의 신비한 물체

 

무족영원:신해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Syzygy:신해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간결한 배치, 민음사 일인용 책:신해욱 산문집, 봄날의책 해몽전파사 신해욱 소설 양장본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가방이 열려 있습니다. 너는.

 

 구슬이 가득하다.

 

 쏟아질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안경을 쓴다. 껌을 씹는다. 풍선을 분다. 의혹이 부푼다. 저것은 구슬인가. 알인가. 소우주인가. 생명보험회사의 사은품인가.

 

 무차별의 햇빛과. 보도블럭의 패턴과.

 

 모퉁이를 돈다. 풍선이 터진다. 법원을 지나. 도서관을 지나. 머리를 묶는다. 너는. 가르마가 가리키는 운명을 숨기려는 것 같습니다. 인파를 헤치고. 공무원으로. 외판원으로. 도서관 옆에 조달청 건너 성모병원. 아니면 잡상인으로. 아니면 생명제조무한합자회사의 납품 담당으로. 녹초가 되어. 무겁다. 쏟아질 것 같아서.

 

 선을 넘습니다. 나는.

 

 씹던 껌을 다시 씹는다. 터진 풍선을 다시 분다. 가방이 열려 있다. 신고를 해야 할까. 가방이 열려 있다. 암거래를 해야 할까. 교차로 건너에 터미널. 계단 아래에 지하상가. 사이렌이 울린다. 생명보험에 들어야 할까. 먼지가 날린다. 만원 버스를 타야 할까. 풍선이 터진다. 인구론을 읽어야 할까. 주역을 공부해야 할까.

 

 깨진 맥락과. 무너진 간격과. 삭제된 심층과.

 

 가방이 열려 있습니다. 너는.

 

 머리끈이 풀린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정오를 지나. 터미널을 지나. 뿔뿔이. 낱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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