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열흘 전에 왔다는 여자는 커피를 주문하고
영양에서 보름 전에 왔다는 여자는 쌍화차를 마신다
분명코 회갑을 어딘가 달력에 표시해두었을 나이
아가씨라 부르지 않으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무작정 한 주전자 커피를 다 마셔대는 사이에도
여자들의 표정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시들어간다
아직도 장작난로가 검고 붉게 타는 동네
다방 한 켠 탁자 위에선 화투패가 돌아가고
못 견딘 스님 하나는 결국 술을 사러 나가고
별로 할 말이 남지 않은 초면의 사람들끼리 남아서
새로 뽑힌 대통령의 미래를 걱정한다 늘지 않는 아이들과
늘어가는 빈집들과 줄지 않는 빚
여자들은 빚, 이라는 낱말에 새롭게 치를 떨며 잔을 헹구고
쌍화차를 다시 주문한 뒤 착착착, 담뱃불을 붙인다
착착착, 화투패는 돌아가고 오도재에서 고장 난 차는
아직 견인조차 되지 않는다
사흘째 눈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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