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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첫사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나는 견갑골이 날개 뼈가 되는 이야기에 중독되었지. 천사 병에 중독되었지. 나는 매일 그 이야기만 썼어. 이렇게 춥고 얼어서. 벽을 건너 다른 곳에서 걸을 때마다 부서지는 소리에 중독되었지. 날지도 못하면서 어깨는 왜 새와 비슷하게 생긴 것일까. 나는 단추를 풀며 숨을 죽인다. 옷은 영혼의 집. 뼈와 뼈가 웅성대는 집. 아무리 멀리가도 볼 수 있다. 옷처럼 날개를 입고 있으면. 이 금을 넘어가도 볼 수 있다. 침대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어깨만 만졌는데. 너무 무서워서 더듬기만 했는데. 너를 건너 다른 곳에서 걸었지. 너의 중력에 내가 부서지는 소리. 추운데도 옷을 벗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중독되었지. 날아가는 이야기에 빠져들까 봐 옷을 벗고. 이제 쓰는 것은 그만해. 너는 펜을 버린다. 이렇게 벗고 있으면 영혼을 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너의 중력에 내가 뭉개지는 소리. 발밑에서 뼈와 뼈가 녹아내리는 소리. 팔에 돋은 털이 너무 없어서 창피해. 긴 털을 가진 자를 떠올린다. 입김이 서리는 안경을 벗고. 이 얼굴을 넘어가도 볼 수 있다. 입술을 맞대고 깨물면 부정하게 물드는 것 같아. 영혼을 벗고 비릿한 냄새를 맡자. 원래 이 이야기의 끝은 냄새 아니니? 그래. 견갑골이 부정하게 흘러내리는 순간. 어떤 구멍에는 악취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벗고 침대에서 꼭 껴안고 있다. 이제 날 수가 있어. 생각만 해도 아름답지? 너는 내 입김에 부서진다. 하수구에서 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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