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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숲의 축구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숲에 가득한 건 비밀들.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신발이 없어 울고 있으니, 발이 없는 자가 다가왔다는 페르시아 속담.

 

 아이들은 양탄자를 짜고 축구를 한다. 실패를 둘둘 말아서 너의 발이 멀리 날아가도록 힘껏 찰게. 붉은 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비밀은 잎에서 잎으로 건네진다. 아이들이 발을 찬대. 공은 흐르고, 공보다 아름다운 맨발이 흐른대.

 

 예전에는 슬픔을 돌보았대. 눈물이 영웅이 되는 시간. 이 숲에 와서 잎사귀가 자라도록 울고 아이들은 강을 건너간다.

 

 경기가 끝나자 무성한 나무들이 여름을 떠나간다. 오래된 나무 집 그늘 안으로 남은 빛이 모여든다. 이 세계에는 오로지 한 계절뿐인데, 양탄자를 짜느라 계절을 넘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기후는 양탄자에 모여 있다. 비밀인데, 아이들은 그렇게 늙어가고 있대. 흰 눈이 내리고. 멀리 날아갔던 발들이 모여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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