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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 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이영재 시집, 창비

 

 

 둘은, 혼자 있을 때

 온도와 습도와 바람이 둘의 취향으로

 적당할 때

 

 벽이 많고 나무가 많고 골목이 많고 새가 많고 사람이 많고

 많은 게 더 많고, 더 많은 것마저 더 많을 때

 

 둘은 보았다

 둘 밖으로 말할 수도 없고 말한다 해도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을 보았다 둘 안에서조차 말할 수 없는 것을 혼자 있는 둘은 보고 말았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어떤 예를 들어도, 예는

 둘이 본 것이 아니다 둘이 본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옆에 있는 사람도 앞에 있는 사람도 뒤에 있는 사람도 위나 아래에 있는 사람도, 새나 나무나 벽이나 CCTV나

 손을 맞잡은 서로마저, 보지 못했다

 

 혼자 있는 둘만 그것을 봤기에, 둘은 보고

 둘은

 혼자 느꼈다

 

 둘은 놀랐다

 많은 것들이 더 많아지다가, 동시에 사라진다 해도 놀라지 않았을 둘이지만, 그걸 본 둘은 놀라고 말았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 둘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결코 참을 수 없을

 겨우

 그만큼만,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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