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던져지고
나는 관객 된 도리로, 연기되는 나를 잘 지켜보는 편이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마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독백하며 저쪽의 내가
떨어지는 공을 받는다
놀라운가, 아니다
박수가 터지기 전에 다음 독백을 시작할 것이다 던져진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다시 공을 던지기로 약속되었다
생각이 가해지는 공과
생각이 사라지고
다시 생각이 가해지는 공 사이에
나는
온갖 예상되는 나를 해할 수 있지 죽되, 죽지 않는 선에서 칼을 쥐는 법을 알고 있으니 칼은 휘두르는 게 아니라 밀어넣는 것이지 비틀며, 약속된 곳으로 반복 없이도 또다시 나로서 생각될 수 있다면 그렇지, 비틀며
무수한 시체들이 제 역할에 너무도 충실해 기쁘다 기쁜 역할에 충실한 내게 질투가 난다 질투하는 내 역할에 너무도 충실할 수밖에 없는 내게
하품이 난다 참아야 한다 하품이 나지 않는다
참을 필요가 없다
하품을 하며
하품하는 역할에 충실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이봐, 저 시체는
약속 이상으로 피를 많이 흘린다
괜찮다 기대된 박수를 참는 것마저 장점이 될 수 있다 저 시체가 왜 나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공은 공으로 충분해진다 현재의 공은 아무런 힘도 가해지지 않은 생각에
멈춰 있다 (가능하냐고? 내가 연민마저 참으며 모두라고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하므로)
생각되되
생각될 것이다 우연 없이도 던져진 공은 떨어지는 공으로 약속되었으므로, 건너의 내가 건너의 내 역할을 독백할 필요조차 없으니
어떤 자학도 기만하지 말 것
보라, 던져질 공은 이제 내 손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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