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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 의식의 흐름을 따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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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장소들이 궁금해.

 너는 어디에 있는 나를 기억할까.

 너의 상상력은 나를 어디까지,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나를 상상하는 너를 상상하면 나는 네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 수 있을까. 너를 상상하는 나를 상상하면 너는 내 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을까.

 너는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중얼거렸지.

 미안합니다, 너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몹시 부끄러워 했어.

 내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때 나는 생각했지.

 너는 왜 부끄러울까.

 그때 너는 다른 시간 속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나는 너의 등 뒤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내가 비 모양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변할 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검은 우산이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거의 젖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날 우산도 없이 빗속에서 나를 찾으러 어딜 그렇게 그렇게 쏘다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