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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 청기가 오르지 않고

 

[창비]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시집), 창비 구관조 씻기기:황인찬 시집, 민음사 구관조 씻기기:황인찬 시집, 민음사 이미지 사진(2021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9791190885478, 황인찬 등저

 

 

 청기를 올리라는 명령이 있고

 

 청기를 올리지 말고 백기를 내리라는 명령이 있고 나무가 자라는 저녁이 온다고 하면 나무가 자라는 저녁이 온다 광복된 것처럼 손을 들라는 명령도 있고

 

 여보세요, 말하면 거기를 봐야 하고

 미세요, 말하면 밀어야 한다

 

 저녁의 연인들은 명령을 예감하며 두 손을 잡고 열차가 들어오면 노란 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명령이 있고 더 잘 실패하라는 명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오른쪽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런 명령이 내려지면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걷고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온 거리에 청기를 올리고 백기를 올리고 그런 명령이 내려지고 환경을 아낍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공중을 올려다보면 온통 그런 명령들이고

 

 저녁이 지나면 밤은 명령을 내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잠들고, 모든 것이 평화롭고, 꿈도 없이 깊고 편한 잠에 빠지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그만 청기를 내리라는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