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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 너의 살은 푸르고

 

[창비]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시집), 창비 구관조 씻기기:황인찬 시집, 민음사 희지의 세계:황인찬 시집, 민음사

 

 

 그날밤, 바다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해변의 놀이공원,

 부모와 아이 하나로 이루어진 현대적 가족,

 요란스럽기만 한 불꽃놀이와

 어떤 기대 속에서 몸을 붙여 걷던 연인들

 

 "바다 냄새는 죽은 생물들이 내는 냄새래"

 그렇게 말하던 너의 살은 푸르고 짠 냄새가 났지

 

 그날 이후로

 너무 푸른 것은 구분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홀로 걸었다

 

 이제 해변에는 아무도 없구나

 

 바닷가의 텅 빈 유원지,

 

 출렁이는 검은 모래,

 죽은 물새떼와 영원히 푸른 달빛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네가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밤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구분되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해변의 발자국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푸른 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