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무고한 한명의 아이를 영원히 지하실에 가두는 어떤 도시에 대해서, 거대한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소규모의 폭력을 준비하는 늙은 소설가와 건축가에 대해서, '외로운마음'이라는 이름을 걸고 신문상담란을 운영하며 신앙을 잃지 말라는 답변을 해주는 삶에 지친 어떤 남자에 대해서
가끔은 슬픈 목소리로, 또 가끔은 즐거운 목소리로,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야,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이야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그러나 나는 네가 왜 소설 속의 일을 정말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너는 말했다
홀로 지내던 날들과 준비 없이 떠난 여행과 한낮의 물가에서 보았던 반짝이는 돌들에 대해, 그리고 갑자기 흘러내리던 까닭 모를 눈물에 대해
죽기로 한 사람이 물속에서 눈을 뜨면 보이던 것에 대해
지금 너는 내 옆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다
나는 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겠지
이것은 정말 있었던 일을 적은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니 이미 저녁이었다
저녁의 붉은빛 아래로 물가도 돌도 없는 서울의 언덕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언젠가는 다 적어야겠다고,
그러나 사실로는 적지 않아야겠다고
그런 생각 속에서 있었던 일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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