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두 딸이 눈길을 걷고 있었다
두 딸은 서로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넣으며 웃었고
모두 우산을 쓰진 않았다
눈이 많이 와 모자라도 써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느리게 따라오는 두 딸에게 말했고
두 딸은 동시에 같은 대답을 했다
눈이 좋아 안 쓸래
그때 내 아랫입술에 눈이 톡 내려앉았고
나는 보이지 않는 눈의 결정을 천천히 녹여 보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썩 좋았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데
세상이 금방 하얘지지는 않았다
반드시 써야 하는 우산과
우산을 놓는 손의 각도를 생각했다
떨어진 눈보다
공중에 날리는 눈이 더 많아서
그런 눈들을 알알이 세어 보다가
그런 눈들과 친밀해지는 공기의 흐름을 볼에 새기다가
쓰던 우산을 접으면
한 번쯤 고개를 들어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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