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이 생긴다 눈빛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눈빛을 보낸다 영정사진이 기울어져 있다 주변에 꽃들이 많다 향기는 맡을 수 없다 몸도 마음도 사라졌고 기억만이 남았다 넓은 등을 가진 사람이 엎드린다 일어나지 않는다 흐느끼는 자세는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죽음을 애도하는 몸짓들을 이으면 그것을 춤이라 부를 수 있을까 향을 계속 피우는 일 근조화환을 세우는 일 국화꽃을 국화꽃 위에 올리는 일 밥상을 차리다가 그릇과 음식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일 옆에서 꾸벅 졸고 있는 상주를 깨우는 일 어이, 술 좀 더 갖고 와 빨개진 얼굴들을 터뜨려 버리는 일 화투 소리가 창밖으로 섬광처럼 튀어 오른다 부의함이 열린다 하얀 봉투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이름들이 쓰여 있다 아직 썩지 않았는데 생기가 도는 팔과 발바닥이 있는데 피가 돌 것만 같은데, 관의 크기만큼 눕는다 여기서 딱 그만큼만 사라질 것이다 입속에서 구취가 난다 나무가 되고 흙이 되고 숨이 될 시간이다 누군가 나를 보러 오겠지 가끔 나를 기억해주는 바람이 불겠지 사람들, 잘 닦인 밤하늘 같은 비석 앞에서 웃고 떠들며 과일을 씹다 과즙을 흘리겠지 회관에서 점심이나 먹고 갑시다 서서히 내게서 등을 돌리면 등에서부터 멀어지는 기억과 흔적 나도 나를 잊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남은 뼈는 곱게 갈릴 것이고 저 강물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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