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는 미아리가 되고 차창에 들어오는 빛이 옥스퍼스 셔츠가 되고 유모차는 다리 저는 개가 되고
잠들어 기댄 어깨가 어두운 종점이 되고
늙은 나무는 고향집의 은유가 되는
그것이 삶이라니
돌아오는 길은 모르는 동네다 공원을 걷는 사람은 호수의 조명이고
매일 밤 거실 바닥에 누워 생각한 것은
잠들면 모두 까먹게 된다
너무 이상해
문을 열고 나가면 아는 것들만이 펼쳐져 있는데, 문을 열고 나가면 모르는 일들뿐이라니
그것은 네가 어느 저녁 의자 위에 올라서서 외친 말이다
나는 네가 의자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그것만 걱정했고
그런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고,
이제는 일상 말고는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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