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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 흑백

 

[민음사]양방향 (김유림 시집), 민음사 세 개 이상의 모형:김유림 시집, 문학과지성사

 

 

 창문턱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사람의 손에 컵이 들려 있다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이는 그의 손에 들린 커피에

 

 우유를 붓고

 하얗게 잠재우고 싶은 마음은

 

 나의 마음

 

 또 다른 나의 마음은

 그사이 밖으로 나가

 사람들 틈에 섞인

 그의 빈손처럼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가 들면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두드리고

 휴가철 강렬한 햇빛에는

 선글라스를 꺼내 든다

 순서가 반대일까

 아무려나 걷는 사람은 그거나 그가 아니고

 이제는 거리처럼

 거리의 마지막을 가리고야 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처럼

 앞뒤가 중요하지 않다

 

 잎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네요

 말도 할 것 같네요

 손도 흔드는 것 같네요

 슬픔도 모르면서

 

 떠나는 사람의 마음과 같네요

 

 그런 말과 그런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모르면서 잎은 살아 있는 것 같네요

 

 떠나고 난 뒤를 알 것 같아

 가방이 무겁고

 그릇을 부수고

 잎이 푸르러질까

 

 그리워해 줄 사람이 필요한 사람,

 언덕 너머로 어서 사라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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