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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 소녀들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복숭아가 떨어져요

 가슴에서 허벅지로 발등으로 자꾸만 떨어져요

 이마에서 짓무른 향이 나고 저는 길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어요 발가벗겨진 채 누워 있어요 사람들이

 밟고 밟아 얼굴이 뭉개져 부끄러웠어요

 길가에 누운 소녀,

 발 뻗으면 작은 갈림길 생겨났어요 그 사이엔 물풀이

 한 줌의 털처럼 자랐고 몸 조금씩 불어갔죠

 호수에 검불이 떠다녔고 종소리도 얕게 떠다녔어요

 모든 것이 죽고 나서야 떠다니네요

 

 저기에도 소녀가 있어요

 그 소녀, 나뭇잎 속에서 싯누렇게 말라가고 있어요

 연인들 속삭이고 아이들 뛰어다니지만

 아무도 보지 않네요

 벤치 아래 소녀,

 소녀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봐요 축축한 슬픔과 함께

 썩어가면서 소녀는 자신을 눕힌

 신사를 봐요 엄마와 할머니가 공원을 지나가지만 여길 보지 않네요

 그들은 행복해 보였고 뒤돌아볼 이유가 없었어요 소녀만

 작게 외쳤어요

 엄마

 

 엄마는 자신을 사랑했어요

 구름사다리에도 소녀가 있었죠

 긴 머리칼을 풀어헤친 채 단화 고쳐 신고

 소녀는 고백했어요 그 머리칼 속에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죠

 긴 머리칼 소녀,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었어요

 목매달고 엄마를 바라보았죠 

 그건 어떤 이유도 필요 없는 일이었어요

 소녀가 발 까닥이며 자신의 머리칼 속에 파묻히네요

 

 소녀들

 다리를 쭉 뻗고 누운 소녀들

 길에서 벤치에서 철봉에서 더 길게 길게 누운 소녀들

 그런데 사람들은 보지 못했죠

 도대체 그들은 어떤 걸 보고 있을까

 작게 재잘대는 궁금한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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