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주 낡은 벽이었지
하얀 점이 그려진
그런 벽
너는 비밀을 적고
나는 하얗게 덧칠하는
그런 벽
점은 더욱 커졌지
거대해진 점
말랑말랑하게 부풀어 오른 하얀 점
마치 시간의 물집 같았지
밤,
나는 힘껏 벽의 물집을 뜯었어
안은 텅 빈 통로더군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실타래가 가득,
내가 톡 하고 건드리자
실타래가 쩍 벌어졌어
그 속에서 사람들이 쏟아지는 거 있지
그들은 딱딱하게 굳어
녹색 돌이 되고
붉은 돌이 되고
검은 돌이 되어
차곡차곡 쌓였어
그만, 나는 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셈이야
내 비밀을 말해줄까
사실 내 팔뚝에는 하얀 점이 있어
점은 더욱 커져 물집처럼 부풀었지
말랑말랑한 부분을 잡고
껍질의 경계선을 뜯어내면
살이 뜯겨져 팔뚝 안이 보여
그 속에는 핏줄도 뼈도 없어
마네킹처럼 텅 빈 팔뚝,
쩍쩍 갈라진 그 속에는
아주 작은 팔이 자라고 있거든
그만, 나는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백한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