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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 사물함

 

숲(ㅅㅜㅍ):김소형 시집, 문학과지성사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사물함을 열었더니,

 늙은 염소가 얼어 있었어,

 목이 뒤로 꺾인 채,

 나는 뜨거운 밤이 들어갈까 문을 닫았지.

 

 두번째 사물함을 열었더니,

 집 나간 어미가 나를 보았어,

 거기서 뭐하세요,

 무서워, 무서워,

 나는 자물쇠를 걸어주었단다.

 

 세번째 사물함을 열었더니,

 잃어버린 악몽이 가득 차 있었네,

 뱀의 눈을 가진 남자,

 하반신이 잘린 채 눈알을 뽑고 있지 뭐야,

 내가 쳐다보자

 그는 갓 뽑은 눈알을 내게 주었어,

 그가 웃으며 문을 닫았지.

 

 마지막 사물함은 굳게 잠겨 있더라,

 통, 문을 두드리고,

 퉁퉁, 발로 두드리다

 아까 받은 눈알을 밀어 넣고 안을 들여다보니,

 길 잃은 사물들이 춤을 추고 있었어,

 모든 사물함을 다 잠글 수 있을 자물쇠 주변에서,

 둥글게 통, 퉁, 제를 지내듯.

 

 어느새 나는 지루한 시계가 되어

 그들과 뛰어다녔단다,

 그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사물함 안에서 자물쇠를 걸고, 그렇게,

 

 또, 세계를 닫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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